[한경에세이] 위기를 극복하는 길

입력 2021-02-18 17:57   수정 2021-02-19 00:04

얼마 전 한 언론에 보도된 사진기사를 보고 가슴이 뭉클해졌다. 서울역 광장에서 한 시민이 노숙인에게 점퍼를 둘러주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너무 추워 커피 한 잔을 사달라고 부탁한 노숙인에게 5만원짜리 지폐와 방한 점퍼, 장갑을 건네주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불안과 불편함의 정서가 우리 사회의 온기를 앗아가고, 편견과 불신만 남게 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덜어내주는 사진이었다.

사진기사를 보며 과거 보라매병원에서 의료 활동을 하던 당시 노숙인과 얽힌 경험이 떠올랐다. 이전까지 노숙인은 성격이 거칠 것이라는 편견이 있었지만, 진료하면서 만나본 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 역시 내면에 부드러움과 따뜻한 정을 품고 있기는 매한가지였다.

간혹 고성을 지르거나 난동을 부리는 노숙인 환자들로 병원이 소란스러워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내게 진료를 받고 있던 다른 노숙인들이 나타나 그의 흥분을 달래주거나 행위를 저지하곤 했다. 아무런 편견 없이 그들을 진료하다 보면 그들 역시 편견 없이 내게 다가왔다.

한번은 바이러스성 전염병으로 남자 아이가 병원에 실려온 적이 있었다. 아이는 의식불명이었지만 곁에서 돌봐줄 부모도, 친지도 없는 처지였다. 그러자 입원 중인 다른 노숙인들이 아이의 대변을 받아내고 수발을 들며 지극정성으로 돌봐주겠다고 나섰다. 극진한 간호를 받은 아이는 한 달 만에 의식을 회복하고 깨어났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우리는 누구나 마음속에 이타심을 품고 살아간다. 자기 몫을 나누고 남에게 베풀고자 하는 마음은 오랜 세월 숱한 위기 속에서도 인류가 공동체를 꾸려 존속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작용했다. 삶의 막다른 골목에 몰린 노숙인이라고 해서 예외일 리 없다. 병원에 머무는 동안 의료진과 간병인의 헌신적인 모습을 일상적으로 접하면서 그들 역시 마음속 이타심을 행동으로 발현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지 추측해본다.

적십자 운동의 모태이기도 한 ‘인도주의’는 바로 이런 이타심에서 비롯됐다. 인도주의 정신은 전쟁터 같은 극한 상황에서 국적, 인종, 종교, 이념을 떠나 도움이 절실한 이에게 가장 먼저 구호를 실천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우리는 연대와 협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있다. 의료진의 헌신과 위험을 무릅쓴 시민들의 자발적인 봉사활동, 역대 재난 성금 중 최고액을 기록한 코로나19 모금, 혈액수급 위기 사태에 기꺼이 자신의 혈액을 내어준 헌혈자 등 우리 스스로 어떤 가치를 중시하는지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위기 앞에서 너와 나를 경계 짓거나 편협한 시각을 갖는 일은 없어야 한다. 연대와 협력만이 우리가 위기를 이겨낼 수 있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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